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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과 천황과 텐노 사이에서.

 

살다 보면 소소하게 거슬리는 일들은 꼭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꼭 그런 일들이 대중적으로도 공감을 얻으라는 법은 없게 마련인데, 내게 있어 그런 일들 중의 하나는 바로 이거다.

...왜 이러는데?

아니 분명히 현대 일본의 국가 원수는 총리대신이고, 도쿄의 황궁에서 세월아 네월아 하는 사람(1945년 8월 15일 이후로 사람이 되었다.)은 '천황(天皇)' 아니었나?

내가 잘못 생각하는건가?

사실 신문지상에서 천황을 일왕으로 바꿔 표기하게 된 것은 꽤 예전부터의 일이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존재설만큼이나 강력한 신빙성을 가지고 있는 내 기억력에 의하면(...) 몇년 전부터의 일인데, 난 처음에 그걸 보면서도'이게 대체 뭐하자는 짓이야?' 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천황이 천황이지 일왕은 또 뭐냐.

원숭이를 고양이라고 부른다고 원숭이 목에서 갸르릉거리는 소리 나는거 아니잖아.

이 이야기 처음에 나올 때부터 민족주의 냄새가 꽤 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표기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대개들 그런 이유로 지지하더라.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은 자존심 문제.

천자(天子)는 그냥 넘어가 주겠지만 천황(天皇)은 못 봐주겠다 이거지.

거기다 중국도 아니고 일본이니까.

중요한 문제는 그거다. 하필 일본의 상징같은 사람이 그런 호칭으로 불리고 있다는거.

상당수 한국 사람들은 그 상황 자체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고, 이걸 어떻게 잘 휘둘러서 이용할 수 없을까 생각하는 정치인들은 언론과 결탁을 해서 결국 천황이라는 호칭을 일왕으로 바꿔 표기하기로 한거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이른바 언론을 사용한 포퓰리즘(Populism). 딱 그거라는거다.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거기에 지지할거고, 거기에 더해 언론은 민족언론이라는 칭찬도 받는다. 그러면 신뢰도가 올라가고, 신뢰도가 올라가면 여론 조작도 쉬워진다.

다른 무슨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저렇게밖에 보이지 않는다.

요는 대체 저 치를 천황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뭐 달라지는게 있냐는 말이다. 섬세한 민족의 자존심에 상처를 받나? 지하에 계신지 천당에 계신지 모르는 조상님들이 칠주야로 통곡을 하시나? 아니면 삼대조 할아버님이 독립투사여서 일본의 일 자도 꺼내면 안되는건가? 그럴것 같으면 일'왕'도 문제게? 조선도 '왕' 이고 일본도 '왕' 이니까.

...근데 왜 중국 천자는 중국 왕으로 안부르고 천자라고 쓰는데?

지금은 천자가 사라진지 오래지만, 그래도 관련 글이 나오면 꼬박꼬박 천자라고 써 주잖냐.

중국한테는 하도 오래 기다 보니 요즘도 기고 싶은가 보지?

천황이라고 부르다 보면 말에는 언령이 있어서 결국 우리가 그들을 섬기게 될거라는 착각이라도 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잖아.

그냥 하나의 호칭이라고 생각하면 안되나?

지금에 와서 천황이 무슨 권력을 크게 가진 것도 아니고.

자존심이 허용을 못하겠다 그러면 그건 개인적인 문제니까 그렇다고 치지만 '네 자존심이 그걸 용납한다니, 너는 한국인이 아닌게 틀림없어!' 라는 둥 기괴한 말을 하면 문제가 된다는거지. 내 자존심을 네가 알게 뭔데.

정 천황이라고 부르기 고까우면 텐노라고 부르면 안되나?

개정된 외국어 표기법에도 그게 맞는거니까.

주윤발도 저우룽파 라고 부르는 세상인데 천황을 텐노라고 못 부를건 또 뭔가.

오히려 그 쪽이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 이런 이야기를 왜 하고 있는거지.

그런다고 해서 내일부터 일왕이 텐노가 되는것도 아닌데.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더 있는 쪽이, 그래도 좋은거 아닐까.

중요한건 그거다. 쓸데 없는데 자존심 세워서 뭐 하냐는거.

by 제절초 | 2007/05/08 06:12 | The Grapes of Wrath | 트랙백(2) | 덧글(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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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하이얼레인의 얼음집'▽'♡ at 2007/05/08 08:17

제목 :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일왕과 천황과 텐노 사이에서. 오랜 기간 쌓여온 피해의식이죠 뭐( --) 사람 일은 사람이 사람들에게 하기 마련이고, 그 사람이라는게 졸 비이성적인 존재라( --);; 뭐 그러려니 하고 살고 있습니다만 맹목적으로, 혹은 감정적 이유로 민족주의를 졸졸 따라다니거나.. 아니 뭐 이것도 뭐 그러려니 해요. 이게 일본이 우리한테 했던 학대의 근거와 유사하게 우리에게도 일어나고 있다는 일은 까맣게 잊으시고 외국인 노동자들 학대하는 걸로 이어지는 근......more

Tracked from 너와집 at 2007/10/10 19:50

제목 : 쪽발이 두목 놈한테 하늘 천자를 붙이다닛!
일왕과 천황과 텐노 사이에서.못지 않은 히스테리컬한 반응이군.한국에서는 태국의 군주를 황제라고 하지 않고 왕이라고 부르는데, 그 말뜻이 별로 천자스럽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지. 이슬람의 여러 술탄과 말리크들을을 모두 왕이라 바꿔 부르는데, 일본의 텐노를 왕이라고 부르는 게 비하가 될 이유는 뭔가. 거참 이상한 존숭 의식이로세. 한자를 한국식으로 읽어주지 않으면 국제주의와 문화상대주의에 뭔가 죄를 짓는 ......more

Commented by 피해망상 at 2007/05/08 06:53
일본쪽에 좀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게 하루이틀 일은 아니죠.
그래도 확실히 덴노같은 고유명사는 있는 그대로 인정을 해 줬으면 하는데 말입니다.
Commented by 혈견화 at 2007/05/08 06:56
저는 천황이 싫군요. 일왕이 좋습니다.
Commented by Quency at 2007/05/08 07:36
전 그냥 막연히 일왕이 더 듣기 좋거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하긴 우리나라에는 일본만 유독 차별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더 부끄러운 일입니다. 담담해지면 좋을텐데 말이죠.
Commented by 날씨좋다 at 2007/05/08 07:49
저는 덴노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고유명사니까요.
Commented by 카오리군 at 2007/05/08 09:01
현실적으로 덴노. 라는 표현을 쓰기 힘든 이유는. '현재의 덴노 제도를 유지하되...'라고 뉴스에 뜨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저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이해할수 없다는데 있지. 따로 각주를 달아야 할걸. 현실적으로는 천황이라고 쓰는게 가장 상황에 맞을테고,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덴노라고 쓰고 천황이란 각주를 달아서 덴노라는 명칭이 사람들에게 대중화되었을때 각주를 없애는 방법이 가장 좋을거라고 생각해. 어떻게 보면 웃긴게. 우리나라는 서울을 중국어 표기로 漢城이라고 쓰던걸 首爾라는 개선된 표기로 쓰겠다고 주장하는 주제에, 타국의 고유명사인 덴노를 지들 멋대로 일왕이라고 바꿔부르는건 좀 말이 안된다고 봐. 일본이 우리나라의 종속국인것도 아닌데 '일왕'이라니. 그저 우리가 문화적인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고픈 몸부림으로 밖에는. ㄱ-
Commented by 지녀 at 2007/05/08 09:05
저는 천자등 천황이등 둘다 싫...(...) 너네가 뭐 해준게 있다고 천자를 붙이긴 붙이냐...라는 생각(...) 둘다 그냥 일왕 중왕(중왕?)으로... 고고싱(...)
Commented by 알민 at 2007/05/08 09:23
아마 황국신민...의 아픈 기억 때문인 것도 같습니다.
Commented by 시리오르 at 2007/05/08 09:35
제발 신문지상에서라도 저런일은 좀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ed by Fe☆ぺ at 2007/05/08 10:24
천황은 고유명사니까 천황이라고 하는게 맞지요.
천황따위보다, 명성황후나 민비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ㅂ=
Commented by 이끼 at 2007/05/08 11:52
전 천황이든 일왕이든 다 싫어요 -_-;;;
Commented by 코토네 at 2007/05/08 11:59
우리나라도 옛적에는 황제라는 호칭을 쓴 적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역사서적에서 보았던 기억으론 고려 때 원나라의 압력으로 황제 -> 왕으로 격하되었다고 하더군요. 왕을 부르는 호칭도 폐하 -> 전하로 바뀌었죠. 짐 -> 과인도 있고. 물론 중국에 알아서 기기 위해서 스스로 낮추었다는 얘기도...-_-;; 사실 한국인 입장에선 '천황'이 배알 꼴리겠지만, 일본 입장에선 1500년 전부터 써오던 호칭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이 제국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부각되었을 뿐이니까요. 다른 의견이 있으시다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Commented by 코토네 at 2007/05/08 12:01
추가. 위키 백과에 보니 역시 고려 때 왕실의 호칭과 격이 제후국에 걸맞은 것으로 격하되었다고 하더군요.
Commented by 파김치 at 2007/05/08 14:12
일왕은 또 뭐야...-_-;;; 천황이라고 불러서 우리가 그를 우러러 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명칭'이 되어버렸는데도 딴지를 거는군요.
Commented by Dataman at 2007/05/08 17:11
조금 생각이 다른데, 원래 한국의 수면상의 매체에서 '천황'이라고 써 준 일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천황'이라 한 것도 김대중 때가 최초입니다. 즉 뿌리깊은 적개심과 함께 세상에서 오직 동아시아만이 '왕'과 '황제'간의 딱딱한 위계가 있다는 점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는 거죠. 시황제가 처음 '황제'라는 타이틀을 달았을 때, 그 '황제'에는 왕 위의 지배자, 또 세계의 지배자라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다만 중국에서는 황제 타이틀을 무시하기 어려운 게, 대부분의 시기에 왕이 동시에 존재했으니까요.

일본이 천황을 자칭한 것도 중국에 대한 대항의식에서라고 볼 때, '왕'이 종속성을 띠지 않는다면 왕으로 지칭하는 건 나쁜 태도가 아닙니다. 게다가 현재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Emperor 급의 지칭을 하고 있는 것도 일본천황입니다. 즉 천황으로 지칭하든 왕으로 지칭하든 별 문제는 되지 않는다는 소견입니다. (저는 통상 '일본국왕'으로 씁니다) 다만 '메이지천황'과 같은 역사적 칭호를 굳이 격하할 이유는 없긴 합니다.
Commented by 신★치 at 2007/05/08 17:11
중국이라고 안하고 짱깨라고 쓰면 됨
Commented by 제절초 at 2007/05/08 20:58
피해망상// 그러게 말입니다.
혈견화// 으음. 그런가요.
Quency// 전 일왕이 더 낯설어요 'ㅅ';;;
날씨좋다// 에에 저 역시도 'ㅅ'
카오리군// 음. 하긴 그것도 그래;; 나도 저우룽파 보고 처음에 누군가 했으니까.
지녀// 아하하;;
알민// 아마 그렇겠죠=-=; 그것말고도 여러 요인이 더 있겠지만...
시리오르// 음. 그렇지만 이미 대중적 호칭이 돼 가고 있는 듯;;
Fe// 하긴.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있더라. 무식하긴=-=
이끼// 네;;; 알겠습니다.
코토네// 에에. 고려시대엔 그랬다고 들었어요. 뭐, 천황 문제야... 제가 아는게 뭐 있겠습니까;
파김치// 그러게 말이지 'ㅅ'
Dataman// 그렇지만 그런 역사적 칭호를 굳이 격하시키니 그렇죠.
신★치// ...그건 촘;;;
Commented by 非狼 at 2007/05/08 21:40
뭐, 일본의 TV 뉴스에서도 다른 나라 수반은 설령 조지고 부시는 미국 대통령이 오더라도 평어체를 쓰면서 천황가에 대해서만은 "사마"를 꼭 붙이니까요. 물론 일본어에서는 직책명 자체에 존경의 뜻이 담겨있긴 하지만, 다른 나라 수반이 천황과 대면하고 있는데 "미국 대통령이 천황님과 대면하였습니다." 라는건 역시 묘한 (...)

하지만 정 꿀리면 정말 "텐노"라고 쓰면 될 것을 굳이 일왕이라는 약간의 비아냥거림 섞인 뉘앙스의 호칭으로 부르는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가네요. 그럼 차라리 김정일씨한테도 북괴군 총수 김정일이라고 부르던가 (...)
Commented by 나인볼 at 2007/05/09 00:35
확실히 저런 건 자격지심이라고 밖에 생각 안됨. 뭐랄까 '다른놈들은 괜찮아도 왜놈은 안돼!'라는 시대착오적 경쟁의식의 발현같기도 하고. =_=; 정말 제기해야 될 문제는 따로 있는데 말이다.
Commented by 보리차 at 2007/05/09 00:42
'언론을 사용한 포퓰리즘'
예리하시네요.
쿠로다 카츠히로(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한국인의 역사관'을 보면 우리나라 기자들이 '천황'이란 말을 '일왕'으로 바꿔쓰게 된 계기와 또 그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나와있더군요.
저도 '천황'을 고유명사로 받아들이는 게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반발하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천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포퓰리즘의 뿌리는 상당히 깊습니다. 일제강점이 갑자기 막을 내린 후 거의 멸절한 한국의 정체성을 급하게 되살리려다 보니 강한 구심점이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반일주의'였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란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되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세뇌되어 온 것이나 다름없기에 애잔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Commented by 제절초 at 2007/05/09 01:04
非狼 // 풉. 확실히 그건 좀 묘하군요. 뭐, 김정일은 이미 김정일 교주님이 되셨습니다.(...)
나인볼// 그러게 말야. F22 사는거나 좀 태클 걸어야지.
보리차// 헤에 그런게 있었군요. 한번 구해다 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레놀도야지 at 2007/05/09 08:04
링크신고합니다. ^^
Commented by Dataman at 2007/05/09 13:42
'천황'이라는 직책과 '메이지천황'이라는 명칭을 같은 맥락에서 볼 수는 없습니다. '메이지일왕'이 근래 간혹 쓰이긴 하지만 이것이 어처구니 없는 것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죠. 하지만 '천황' 대신 '일본왕' 정도는 문제가 없습니다.

역사상 '황제'를 칭한 왕조는 많습니다만, 이 중 역사 서술상 필요한 중국과 신성로마제국을 제외하면 (국사에서는 대한제국도 필요하지만) 굳이 '왕'과 '황'을 구별할 이유는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했듯 '황' 혹은 '황제'는 한국을 위시한 한자문화권 (다른 말로는 중국 및 주변지역) 에서는 각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 반발심을 단순한 반일주의로 환원하는 게 적절할지는 의문입니다.
Commented by 제절초 at 2007/05/09 20:27
Dataman// 네. 그렇기야 합니다만 굳이 천황으로 쓰던걸 일왕으로 부득불 우기는 그 모습이 눈꼴시어서 말이죠=-= 그렇게 해서라도 상대를 얕잡아보고 싶은걸까 하는 기분이 들어서요.
Commented by 우발사마 at 2007/05/11 10:58
머 천황으로 표기 하면, 그동안 천왕만세를 외쳤던 자신들의 선조 및 등등등이 생각나서 차마 쪽팔리나 보죠-_-;;; 차라리 텐노를 쓰던가... 저도 영국여왕과 찰스황태자 사이에서 참 헷갈렸던 기억이... 어느순간 왕세자로 수렴되더만..
Commented by ペリドツト at 2007/12/05 11:08
중국이 무슨 천자라고 <- 이런 것도 참 눈꼴시리지요.
Commented by 제절초 at 2007/12/05 14:36
페리도트// 아무렴 어때요. 자기들 좋을대로 부르게 두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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