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5월 31일
And She Said, ~ Sister, My Sister. 06
"여동생은 짜장면을 먹겠다고 했어. 나는 그러자고 했지. 굳이 저 밉살맞은 사람의 말을 듣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조금 피곤하기도 했고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아파서 조금 아까까지 침대에 누워있던 사람을 부려먹기는 조금 미안하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야. 적어도 몸만은 여동생의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부엌으로 향했지.
불을 켜 놓아도 우울한 기분이 드는 부엌의 식탁에 마주 앉아 배달시킨 짜장면을 기다리는 시간은 참으로 지루하고 갑갑했어. 차가운 식탁 유리의 냉기가 팔에 스몄지만 그것이 내 팔의 온기로 얼른 데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웬지 매우 짜증스러웠지. 여동생은 아까의 부드러운 얼굴은 어디에 두었는지 여전히 딱딱하고 재미없어 보이는 남편의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어. 저 답답한 얼굴을 매일 보며 밥을 먹어야 했던 지금까지의 내가 대견스럽게 느껴질 정도였지.
고작해야 5분 아니면 10분 남짓한 시간이었을텐데도 그 시간 동안에도 도착하지 않는 배달부가 원망스럽게 느껴졌어. 어째서 내가 짜장면을 먹자고 하는데 동의를 했는지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했고 말야. 여동생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때때로 날 보며 그 보기 싫은 웃음 모양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지. 얼마 뒤 짜장면이 도착하자 여동생은 살가운 목소리로 달려나가며 짜장면을 얼른 들고 왔어. 그 모습은 어찌나 사랑스러우며 역겹고 가증스러운지 식탁에 놓인 짜장면을 들어 얼굴에 처 박아버릴까 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지.
짜장면을 앞에 둔 여동생은 남편이 그랬던 것 처럼 나무젓가락을 랩 위로 마찰해 능숙한 솜씨로 랩을 벗겨내었어. 내 것도 벗겨주겠다고 말했지만 그 행동이 남편의 버릇 중 하나라는 것을 상기해버린 탓인지 그렇게 뜯은 짜장면을 먹을 마음이 들지 않아 거절했지. 우리는 그렇게 짜장면을 먹었어.
그런데 문득 뭔가가 떠올랐지. 생각해 보면 난 지금까지 남편과 짜장면을 먹어 본 기억이 없었어. 남편은 항상 짬뽕이 아니면 볶음밥이었으니까. 오히려 짜장면을 좋아했던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나와 내 여동생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불현듯 나도 몰래 고개를 들어 그를 보게 되었지. 여동생은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잔뜩 입가에 짜장을 묻혀가며 신나게 젓가락을 놀리고 있었어. 그러다 내 시선을 느낀 것인지 문득 나를 보았지. 깜박이는 동그란 눈과 짜장이 묻어 얼룩진 입가가 묘하게 어린애 같아 귀엽다고 생각했어.
'당신 짜장면 안 먹잖아. 꼭 짬뽕 아니면 볶음밥 시켜먹던 사람이 웬일이래?'
말의 내용보다도 그 말을 한 내 목소리와 어조는 분명한 비아냥과 해묵어 낡은 증오를 담고 있었어. 약간은 의도적이기도 했지만. 여동생은 그런 나를 보며 피식하고 입꼬리를 살짝 비틀었지. 남편의 표정이었어. 정말 예전의 남편 얼굴을 하고 있었다면 눈 앞의 물잔을 집어 얼굴에 던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 여동생은 그런 내 기분을 느꼈는지 어쨌는지 곧 웃음을 거두고 입을 열었어.
'글쎄, 나도 모르겠어. 아까 사과를 깎았을 때도 그랬지만, 내가 당신 여동생이 되어가는 모양이야. 웬지 볶음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더라고.'
그러면서 보란듯이 크게 입을 열어 남은 짜장면을 먹었지. 입을 꼭 다물고 씹으라고 몇번이고 말했지만 끝까지 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먹었던 남편이 그랬듯이. 난 그 모습을 보며 웬지 밉살맞은 기분이 들어 차게 쏘아붙였어.
'그런 헛소리 할 시간 있으면 입이나 다물고 먹어. 흉하게 그게 뭐야. 다 보이잖아.'
그러자 여동생은 예의 그 징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바닥에 남은 약간의 면을 쪼옥 하고 빨아들였지. 정말 그 모습이 얼마나 미워보이는지 여동생의 모습마저 짜증이 날 정도였어. 나는 서둘러 내 그릇에 남아있는 짜장면을 다 먹고는 얼른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지. 물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정말 체할것만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그 때였어. 여동생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연 것은. 방금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조금 쓸쓸한 말투였지.
'그런데 말야... 난 누굴까?'
평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여동생-의 탈을 뒤집어 쓴 남편에 대한 감정이 결코 좋지 않았던 나였기에 그 말도 곱게 들리지는 않았어. 마침 얼마 전의 밤에 잔뜩 발정이 난 얼굴로 내 침실에 들어왔던 일이 기억났기에 더욱 그랬지. 그래서 뭐라고 또 쏘아붙이려는 찰나 여동생의 말이 이어졌어.
'전에는 내가 당신 남편인 줄 알았는데, 지내다 보니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난 아직도 당신 사랑해. 그런데 그게 내 사랑일까? 당신 여동생 처럼 웃고 떠들고 울고 밥먹고 생리도 하고. 사과도 당신 여동생처럼 깎고. 이젠 내가 좋아하던 음식도 별로 먹고 싶지 않고. 그런데 이게 내 사랑이야? 내 모든게 점차 당신 여동생처럼 변해가. 하루 하루 지날수록 나였던 것이 하나 하나 사라지고 그 자리가 당신 여동생으로 채워지고 있다고. 마치 영원히 이길 수 없는 오델로에서 무한히 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럼 난 뭐가 되는거지? 이대로 가면 마지막에는 난 그냥 당신 여동생이 되는거 아냐? 솔직히 말해서 무서워. 언제까지 당신을 남편으로서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정말 모르겠어...'
마지막 말을 하는 여동생의 목소리는 살짝 갈라지고, 젖어있었지. 나는 살짝 가슴 안에 뭔가 걸린 것 같았어. 슬쩍 본 여동생의 뒷모습은 단정했지만, 어딘가 불안하다는 느낌이었지. 손으로는 식탁보를 꼭 쥔 채 고개만 살짝 숙이고 있는 그 모습이 뭐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안타깝게 느껴졌어. 밉고, 짜증나고, 역겨운 사람이지만 저런 모습을 보이면 미워할 수만은 없게 되는게 여자라는 생물인걸까. 아니, 그걸 떠나서 어쩌면 나는 그냥 미워할 대상이 필요했던건 아니었을까. 어디선가 솟아오르는 이 갈 데 없는 증오를 쏟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저 애정과 증오가 한 몸에 공존하는 기묘한 괴물이 그 대상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어.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를 측은히 여기면서 한편으로는 증오하고 있는 자신을 깨달으니 웬지 몹시 우습게 느껴지기 시작했지. 그래서 결국 나는 침울해 하는 여동생의 뒤에서 넋나간 사람 마냥 키득대게 된 거야. 내가 듣기에도 이상한, 채칵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말야. 나중엔 그 꼴이 더 우스워 더 웃게 되더라고. 정말로 정신이 나가버린 양."
# by 제절초 | 2007/05/31 09:39 | And She Said, | 트랙백 | 덧글(1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Ieatta// 뭔가 있죠?(...)
seijurou// 남편인지 여동생인지(웃음).
아르젠틴// 아내한테 미움받고... 정체성 상실에... 기구하죠^^;
레놀도야지// 미대생한테 있어봐야 영 쓸데없는 재능같습니다만(...). 차라리 이런것보단 좀 더 나은 눈을! orz
그리고 나는 부엌으로 향했지. <- 이걸 클릭하면 밑으로 숨겨졌던 텍스트들이 쫙~ 나오는것은 어떻게 하는거죠?
가끔 블로그에 몇가지 질문을 던져놓고 이거 답을 숨겨놓고 싶은데, 그걸 못해서....
아직 못올리고 있는 질문들이 있어서요..
또하나 더 질문 ㅠㅠ
이것은 작문인가요?????? 작문의 제(;題)는 어디서 얻어오는건가요?
저도 글쓰기 연습을 해보고 싶어서...
접기 태그는
<a href=#none onclick=this.nextSibling.style.display=(this.nextSibling.style.display=='none')?'block':'none';>요기요기</span></font></a><DIV style='display:none'>
이걸 html 편집기에서 넣어주고 이 태그 아래쪽에 글을 쓰시면 돼요.(반드시 html 편집기에서만 사용하셔야 돼요 'ㅁ')
[님 그냥 여동생으로 사셈]
-_-;;;
미역// 아뇨 뭘요^-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