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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She Said, ~ The Hunter

 

"나는 강남으로 가는 지하철 순환선의 아무 좌석에 아무렇게나 앉아있었지. 새하얗게 눈부신 하늘이 맞은편의 창 너머로 보이고, 순식간에 강과 섬이 멀어져갔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철은 다시 터널로 머리를 들이 밀고, 곧 창밖은 다시금 새카맣게 물들었지. 눈이 덜 부셔서였을까, 그 때 문득 내 눈에 한 남자가 들어왔어. 방금 머리를 감고 제대로 말리지도 않은 듯 부시시하고 제멋대로 솟은 머리에 잠에서 덜 깬듯한 멍한 눈을 한 남자였지.
묘한 것은 그 남자의 행동이었어. 끊임없이 눈을 굴리기도 하고 고개를 움직이기도 하면서 사방을 훑어보다가 또 어느 순간은 누군가를 주시하기도 하고. 그것도 뭔가 욕망이 느껴지지 않는 공허한 눈으로 말야. 여자의 가슴께에 시선이 가 있는가 하면 노년의 남자가 신고 있는 구두를 뚫어질듯 바라보기도 했지. 그렇게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이 전철은 목적지에 도착했고, 나와 그 남자의 첫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던거야.
나와 그의 두번째 만남은 남대문 시장에서였어. 나는 그를 거기에서 또 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아무튼 우연스레 거기에서 보게 된거야. 그는 시장에서도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어. 시장 구석에 가만히 앉아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보고 있었지. 그것은 사람일 때도 있고, 옷일 때도 있었고, 리어카이기도 하거나 혹은 그저 멍하니 하늘을 볼 때도 있었어.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만 있기도 했지. 조금 신기하긴 했지만 아무튼 나는 옷을 사야 했기 때문에 서둘러 그 자리를 떴는데, 옷을 사고 집에 가는 길에 그 쪽을 슬쩍 바라보니 그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사라져가고 있었어.
그를 세번째로 만난 것도 남대문 시장이었지. 두번째의 만남으로부터 약 일주일이 지난 상태였어. 사람이 우연스레 세번 만나면 그것도 필연이라고 했던가? 나는 그런 의미없는 속설을 지팡이 삼아 그에게 말을 걸었어.

'...저, 안녕하세요?'

그가 멍한 시선으로 나를 보았지. 그리고 가만히 내 눈을 바라보았어. 자세히 보니 그 눈은 촛점이 없는 것이 아니었지. 그저 너무 여러곳을 한번에 바라보려고 하다 보니 촛점이 없는 것 처럼 보이는 거였어. 그렇게 나를 얼마동안 바라본 그는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켰지. 그리고 덥석 내 손을 잡았어. 거칠지만 뜨겁고 메마른 손이었는데, 내 손을 잡은 채 그는 단 한마디만을 하고 제멋대로 걷기 시작했지.

'밥이나 먹읍시다.'

엉겁결에 그와 함께 가 앉은 곳은 시장 안쪽의 소란스런 국밥집 안이었어. 소란스럽다고는 해도 가게 안쪽은 의외로 시끄럽지 않아 함께 이야기를 나눌만 했지. 서둘러 말아온 국밥을 아무렇게나 숟가락으로 퍼 먹으며 그는 입을 열었어.

'나한테 말 건 사람은 오랜만이군요.'

그 말은 어느정도 납득이 갔지. 사실 그런 기행을 저지르는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잖아? 그럼에도 말을 건 나도 어떤 의미에서는 꽤나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지. 이상하다고 해야 좋을까? 아무튼 그는 그가 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하는 내 속을 읽은 듯 천연스레 말을 이어갔어.

'난 내가 아닌 것들을 관찰하고 있어요. 서 있는 사람, 앉아 있는 사람, 남자, 여자, 팔, 다리, 옷 주름, 피부 주름, 머리카락, 눈, 코, 입 같은 것들을요. 전체적으로 관찰될 때도 있고 그게 아닐 때도 있어요.  그 속에서 무엇인가 발견하게 되면 기쁘죠. 어제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 그저께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 이 사람에게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 저 사람에게는 없었던 무엇. 그 모두가 말이예요. 그렇게 발견하게 되면 이젠 집으로 가요. 물론 가는 길에 잊지 않게 잘 기억하면서요.'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 조금 큰 국 건더기를 숟가락에 밥과 함께 가득 퍼 입에 넣고 꾸역꾸역 씹기 시작했지. 어딘가 게걸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어. 입 안에 미어지게 퍼 넣은 음식이 거의 다 뱃속으로 넘어갔을 무렵 그는 말을 이었지.

'집에 가면 나는 내가 기억한 것을 전부 쏟아 놓아요. 마치 어미 늑대가 새끼에게 뱃속의 먹이를 게워서 주는 것 마냥. 온통 쏟아놓죠. 그것은 글일때도 있고, 그냥 문자의 나열일 때도 있고, 그림일 때도 있고, 선일 때도 있고, 혹은 소리일 때도 있어요. 아무튼 어떤 형태로든 내 기억은 모두 형태를 가진 채 세상에 나와요. 그리고 그런 날것의 재료들은 다시한번 내 손에 의해 가공돼서 하나의 작품으로 태어나죠.'

나는 거기서 갑자기 말을 잘랐어.

'화가세요?'

내 당돌하고 갑작스런 질문에도 그는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그저 한번 눈을 깜박일 뿐이었지. 그리고 조용히 대답했어.

'물감을 쓰지 않는 때가 더 많으니 화가라고 하기는 조금 곤란하고, 그냥 작가라고 해 주세요. 예술가 같은건 좀 너무 거창한데다 추상적이니...'

그렇게 말하는 그는 살짝 수줍어 보였지.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어.

'난 그렇게 내가 본 일상의 느낌들을 작품으로 만들어요. 그것이 사실 그대로든, 내 안에서 왜곡되고 변형되었든 간에 일단 내 안에 들어왔다 나간 이상은 원래 그대로이기는 어렵죠. 난 그렇더라도 그것을 최대한 살리고 싶어요. 내가 토해놓은 그것들을. 그래서 다시 가공하더라도 웬만하면 최대한 내 느낌 그대로를 살릴 수 있도록 하는 편이예요.'

그 때 난 문득 그의 눈이 내 얼굴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의 시선을 따라가자, 그의 눈이 내 가슴께에 못박혀 있음을 알게 되었지.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것이 기분나쁘다던가, 더럽다던가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어. 아마도 그것은 그의 눈빛이 미동도 하지 않을 뿐더러 눈의 반사광 자체도 조금 흐릿해서 마치 인형의 눈처럼 보였기 때문일거야.
그런데 갑자기 그의 눈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얼굴은 그대로인 채 눈만이 움직여 서서히 시선을 윗쪽으로 옮겼지. 처음에는 무슨 일인가 하고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곧 그의 눈이 내 숟가락을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알았어. 그는 국 속에 담겼다가 밥과 함께 솟아올라 천천히 곡선을 그리며 벌려진 내 입안으로 움직여가는 내 숟가락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던거야. 그는 그렇게 몇번이고 내 숟가락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왔어. 그러나 장난스레 움직이는 동선에는 반응하지 않았지. 오히려 내가 처음의 자연스러운 동선으로 밥을 먹을 때까지 신중하게 기다리주고 있었어. 그렇게 한참을 보고 있던 그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 당연하겠지만 난 깜짝 놀랐어.

'...어디가요?'

그는 무뚝뚝하게 대답했어. 낮고 조용해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

'집에. 잘 먹었소.'

그렇게 말하는 그는 어느샌가 지갑을 꺼내어 밥값을 계산하고 있었지. 그의 뒷모습은 언제나처럼 흐느적거리며 인파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었어.
나는 남은 밥을 천천히 입 안으로 흘려넣으며 가만히 생각해 보았어. 그는 과연 내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 보잘것 없는 가슴? 우아하지 못한 식사습관?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지. 그리고 그 다음에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갑자기 조금 오싹한 기분이 들었어. 생각해보면 나는 '관찰' 당한게 아닐까. 그것도 인간으로서, 하나의 생물로서가 아닌 그저 하나의 '어떤 무엇' 으로서. 하나의 움직임? 혹은 하나의 물체? 아무튼 인격이나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닌 의자나 밥그릇과 동급인 그 무엇으로 관찰당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알 수 없는 냉기가 몸을 스쳤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가치 중 어떤 것이 이제 그 쓸모를 다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쓸쓸하고 안타까웠지. 비록 그것이 그가 아니라면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을 그런 가치라고 해도 말야."


 

by 제절초 | 2007/06/05 08:33 | And She Said,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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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Quency at 2007/06/05 09:53
으윽.. 왠지 왕 찔리는 글입니다.
Commented by 알민 at 2007/06/05 11:12
관찰... 저도 곧잘 사람들 관찰하곤 하는데.. 주로 얼굴을 보죠.
Commented by 베지밀비 at 2007/06/05 11:55
의미 없는 시선은 허무해요..
Commented by IEATTA at 2007/06/05 13:13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Commented by 제절초 at 2007/06/05 16:38
Quency// 후후후=ㅂ=
알민// 그런가요'ㅂ'? 사람은 재미있죠^-^
베지밀비// 의미없어도 재미는 있죠 'ㅅ'
Ieatta// 클릭하세요!(...)
Commented by 레놀도야지 at 2007/06/05 17:03
복잡한 시내 식당 2층 창가에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일이 꽤 재미있었던 것 같군요 ^^; 관찰당하는 사람의 기분은... 역시 좋진 않을 듯 합니다.
Commented by Lord at 2007/06/05 20:04
그렇군요..

그 작가가 제절초님인게야(...)

무서운분 //ㅁ//
Commented by 제절초 at 2007/06/05 20:37
레놀도야지// 관찰당한다는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죠^-^
Lord// 그렇지 않아요!!
Commented by 파닭 at 2007/06/06 12:39
과연 어떤 것으로 태어났을지 궁금하네요[웃음] 사냥꾼이니까 박제를 할지도?
Commented by 제절초 at 2007/06/07 00:21
파닭// 설마 'ㅂ'
Commented by LaJune at 2007/06/07 08:44
저 분... 제절초님이십니까. (..........................................도주한다)
Commented by 제절초 at 2007/06/07 08:51
Lajune// 그럴리가 있나요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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