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9월 01일
And She Said, ~ Sister, My Sister 10.
"아침이 되자 놀랍게도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어. 방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느껴지는 집 안의 공기는 레몬 향기가 느껴질 정도로 상쾌했고, 달콤하게 느껴질 정도로 나를 유혹하는 아침식사의 냄새는 막 잠에서 깬 참이었음에도 나를 자연스럽게 식탁으로 이끌었지. 온 집안은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청소되어 있었고 그 속에 밝고 화창하게 웃으며 나에게 인사하는 여동생이 있었어. 난 순간 금동반가사유상에 먹물이 끼얹어진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얼굴을 일그러 뜨렸지만, 워낙에 상냥하고 사랑스럽게 미소짓는 여동생의 모습을 보고 있다 보니 거기에 대고 행패를 부리는 것도 어쩐지 죄책감이 들어 그만두기로 하고 일단 식탁에 앉았지. 일단은 내가 우렁각시를 키우는 것도 아닌 이상 이 모든 것을 여동생이 준비했음이 분명했으니까.
그렇지만 역시 여동생을 고깝게 보아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어. 그 동안 쌓인 감정이라는 것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니까. 일단 내가 이 상황을 조금이나마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을 알면 여동생이 우쭐해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쐐기를 박아두자고 생각했지.
'...제법이네. 그렇게 온통 패악을 부릴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현모양처 행세야?'
그러나 여동생의 반응은 예상외였어. 내가 쏘아붙인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눈이 부실만큼 환상적인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상냥하게 대꾸해 왔던거야.
'이제부터라도 현모양처가 되기로 했으니까. 왜? 그럼 안되나?'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기분이 어땠을 것 같아? 있지도 않은 숙취가 올라와 밥상 위를 온통 토사물로 채워놓을 뻔 했어. 진짜로. 정말 내 평생에 그것보다 더 역겹고 거북한 느낌이 들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거라는 자신이 매일 아침 해가 뜬다는 사실보다도 더 당연하고 진실되게 느껴질 정도였지. 난 도저히 그 기분을 감출 길이 없어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여동생을 노려보았어. 당연히 입에서는 좋은 소리가 나올 리 만무했지.
'이제 진짜로 미치기로 작정했구나. 이왕 그렇게 미쳐버렸으니 당장 내가 머리를 깨버려도 별로 불만은 없겠네?'
솔직히 이제 와서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어. 아무리 불쾌감에 이성을 잃을 것 같았다고 해도 그런 말을 입에 담은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서 말이야. 그런 과격한 말은 어디까지나 생각으로만 끝내야지 입 밖으로 하게 되면 그만큼 내 인격도 상처를 받는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거기에 대한 여동생의 대응은 상상밖이었어. 전처럼 어딘가 뒤틀린듯 한 느낌따윈 전혀 없었는데도 오히려 그 때문에 나를 더 코너에 몰아붙이게 되는 그런 느낌이랄까?'그러면 곤란하지' 라며 밝게 웃는 여동생의 모습은 실로 아름답고 어디 한군데 그늘따윈 없어보이는 것이어서 오히려 내 자신이 더 추하게 느껴질 정도였어. 그래서 난 돌변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갑작스런 여동생의 각성에 참을수 없는 궁금증을 느끼고 노골적으로 물음을 던졌지.
'...어제 한참 주정 부리고 났더니 어디 한군데 맛이라도 간거야? 어떻게 하면 인간이 그렇게 달라질 수가 있지? 무슨 스위치라도 달아놓은 것 마냥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변할 수 있어?'
거기에 대해 여동생은 부드럽게 대답했어. 살짝 눈을 내리 깔고, 가볍게 수줍은듯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 하는 여동생의 모습은 실로 사랑스럽기 그지없었지.
'...그냥... 알게 된 것 뿐이야.'
'그러니까 뭐를?'
'그저, 내 자신을 좀 더 잘 알게 되었다고 할까...'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것만으로 나는 여동생의 급변을 이해할 수 없었어.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지. 그래서 나는 여동생을 더욱 추궁했어. 그러자 놀랍게도 여동생은 신기할정도로 순순히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하기 시작했지. 정말로 꿈만 같은 아침이었어. 창문을 통해 들어온 아침 햇살이 여동생을 비추고,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동생이 밝은 황금색으로 빛나는 듯한 모습이 꼭 동화 속의 한 장면 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 속에서 이야기 하는 여동생과 나는 꼭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었어. 드라마였다면 꼭 이런 장면에는 이런 효과음과 아름다운 배경음을 넣어줬을거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지.
'...그러니까 말야, 어젯밤에 당신이 날 뿌리치고 방으로 가 버린 뒤에 난 많이 울었어. 그렇게 얼마나 울었을까, 울다 보니까 좀 술도 깨고 정신이 나더라고. 그리고 그 적막한 당신의 방 침대 위에서 문득 난 깨닫게 된거야. 내가 진짜로 원하는게 무엇인지를. 내가 왜 당신 여동생의 몸을 가지게 된 것인지, 나는 왜 구태여 이 집에 찾아온 것인지를 말이지. 그건 말야...'
그렇게 말하며 여동생은 자신의 양손을 가슴 앞에 모아 꼭 깍지를 꼈어. 신기할 정도로 소녀같은 행동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싫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지. 왜였을까? 아무튼 여동생의 이야기는 계속되었어.
'난 말야, 그저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을 뿐이야. 당신은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여자였기에 결혼까지 했지만, 난 어느날 깨닫게 됐어. 난 당신을 사랑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했다는 걸. 난 당신을 사랑하기에 앞서 여자 그 자체를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었던거야. 당신은 어쩌면 나에게 있어 그저 사랑하는 사람이었는지도 몰라. 인간으로서, 하나의 인간으로서 평생을 함께 지내고 싶은 신뢰감 있는 사람으로서 말이지. 내가 정말로 원하던 건, 전에도 말했겠지만 여자가 되어 여자로서 사는거였어. 그러기에 당신 여동생의 몸은 딱 알맞는 것이었지. 내가 그녀와 한몸이 된다면 난 나의 소원도 이룰 수 있고, 사랑하는 당신과 평생을 같이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래서 난 그 몸을 택했고, 당신을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온거야.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 나니 웬지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어. 내가 앞으로 여기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서툴게나마 머리 속에 그려졌지. 그래서 잠깐 눈을 붙였다 일어나 서둘러 집안 청소를 하고 당신을 위한 아침식사 준비를 마쳐놓은거야.'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밝게 웃었어. 마치 '그러니까 칭찬해줬으면 좋겠어' 라는 듯한 느낌의 얼굴이었지. 과연 난 어디까지 그 이야기를 믿었어야 했을까? 그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다시금 웃으며 이야기했어.
'앞으로 난 당신을 위해 살거야. 이 집에서 열심히 당신을 위한 공간을 만들면서 당신을 돌보는 것. 그게 당신을 사랑하는 내가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일거라고 생각해.'
난 지나칠 정도로 현실감을 갖춘 현실과 지나칠 정도로 진실감이 없는 진실 사이에서 멍하니 여동생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지. 아무튼 난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어. 일단은 회사에 가야 했으니까 말야. 복잡한 일은 일단 회사에 가서 생각하자고 마음먹은 나는 우선 화장실로 달려가 출근 준비를 시작했지. 그리고 신발을 꿰차기 위해 현관으로 나온 내 앞에는 내가 아끼는 구두가 반짝반짝하게 닦여 딱 신기 좋게 준비되어 있었어. 어느샌가 내 뒤로 다가온 여동생은 수줍은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지.
'...그거... 웬지 오늘은 그걸 신을 것 같아 닦아놓았어. 여자 구두라도 손질하지 않으면 금새 못쓰게 되니까. 괜찮을 지 모르겠네. 맘에 들어?'
난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고 결국 여동생이 볼을 붉게 물들이며 마주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까지 봐야만 했어. 그건 정말로 도살 직전의 소가 맞는 최후의 만찬과도 비슷한게 아닐까 생각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지. 그러나 그런 당황스러움은 오래 가지 않았어. 언제나처럼 붐비는 만원버스에 올라탄 나는 어느샌가 만약 내가 회사에서 집에 돌아왔을 때 마치 만화처럼 식사와 목욕물을 전부 준비해 놓는다거나, 내가 늦게 들어간 날에 정성스레 식사를 준비한 식탁 앞에 엎드려 자고 있다면 그것 나름대로 사랑스럽지 않을까 하는 고약한 망상까지 슬쩍 들어버렸으니까. 정말이지, 인간이란 지나치게 간사한 생물인지도 몰라. 고작 그 정도의 일에 여기까지 마음을 풀어버리다니 말야.
아무튼 난 이제 집에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아. 너무 늦으면 여동생이 걱정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말이지. 아니 뭐 꼭 그것때문에만은 아니지만, 보고 싶은 드라마도 있는데 웬지 지하철에서 혼자 휴대폰으로 보는 일은 쓸쓸하잖아? 별로 맘에 안 들고 종종 걷어차 주고 싶은 여동생이지만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얘기야. 알겠어? 별로 이제 와서 여동생을 용납하거나 용서해 주는건 아니라고. 난 여전히 그때의 일들을 잊지 않고 있어. 그런거야."
# by | 2007/09/01 09:35 | And She Said,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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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집에 가면 아침의 일을 뻥! 이라는 결말을 상상했달까요 ㅋ
어째거나 막연하게 이리 될지도 모를꺼라고 생각했는데 .. 정말되네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