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9월 14일
And She Said, ~ 소녀는 언니를 걱정한다
"나에게는 언니가 한 명 있다. 사정이 있어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세살 연상의 언니이다. 새삼스레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좀 우습긴 하지만 언니와 나는 참 사이가 좋다. 언니가 착한 때문인지, 아니면 서로가 서로의 세계를 공고히 구축하고 있음을 어려서부터 깨달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이가 좋다. 아마 서로에게 적당히 무신경하면서도 거리를 두는 점이 닮은 자매여서일지도 모른다.
그런 언니인데, 난 최근 언니에게 크게 화를 냈다. 싸웠다고 하기에는 거의 내가 일방적으로 다그친 상황이었다. 내가 언니에게 그렇게 큰 소리로 화를 낸 건 정말로 솔직히 말해서 내가 세상에 태어나 언니라는 존재가 세상에 있다는 것을 인지한 이후 처음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때는 정말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화장실에 두시간을 처박혀 생 난리를 떨고 새벽부터 일어나 5단찬합 도시락을 싸고 화장대 거울에 머리를 들이민 채 있는 요란 없는 요란을 다 떨고 나온 언니의 모습이 그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어떤지경인가 하면, 그 전날 밤을 새다시피 하다가 간신히 잠들었던 나도 단번에 잠이 달아날 정도였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그 한심한 꼬락서니에 폭죽처럼 분노를 표출할 정도로.
어제 미장원에서 해온 것이 분명한 와인레드의 세미롱헤어는 광섬유 분수나 되는 것 처럼 요란스레 모양을 내고 있었고, 안 그래도 하얗고 매끈한 얼굴은 있는대로 시커먼 아이섀도며 검붉은 립스틱을 처 발라 마약중독으로 노래를 부르는 메탈밴드의 보컬이라거나 퇴폐적인 고딕 스타일의 공주 꼴이었으며, 귀에는 링이며 체인에 피어스까지 더 이상 꽂기도 미안할 정도로 잔뜩 매달려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목에는 스파이크가 박힌 가죽 초커에 손목엔 무거워보이는 은 팔찌가 잔뜩 걸려 있었고, 벨트와 금속 장식이 잔뜩 박힌 붉은 해골프린팅의 티셔츠 위에는 십자가와 체인 장식의 검은 재킷을 입었다. 또 가죽재질의 검은 미니스커트는 옆쪽에 상어 아가미같은 트임이 줄줄이 나 있어 위험할정도로 허벅지 살이 비어져 나와 있었고 그 아래 망사 밴드스타킹을 입은 채 였던 거다.
덤으로 말해 그런 꼬락서니를 한 언니라는 인간은 더 이상 좋을수는 없다는 얼굴로 해실거리고 있는게 아닌가. 난 혹시나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잘못된 것인가 언니에게 확인을 해 보았다. 그리고 언니는 혹시나가 역시나라던 옛 속담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천진스레 웃으며 대답했다.
'학교. 오늘 데이트 있다니까?'
물론 언니는 내가 알고 있다시피 멀쩡히 대학원에 다니는 제법 유능한 생물학도이며, 학교에 애인이 있는 이른바 C.C.이고, 평소 고딕펑크적인 취미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런 꼬락서니로 학교에서 데이트를 하겠다고 하는건 해도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대체 생전 지금까지 그런적이 없던 사람이 왜 오늘은 유독 그렇게 귀신무당도깨비처럼 하고 학교를 가겠다고 하는 것인지부터 의구심이 생겼을 뿐더러 기가 차고 막힌게 폭발하기까지 한 고로, 조금 전까지 쓰러져 자지 않으면 정말로 죽어버릴거야 라며 신음하던 사람이 누구냐는 듯이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솔직히 겨우 그런 정도에 벌벌 떨거나 마주 소리를 빽 지를 언니는 아니다. 그런 사람이었으면 벌써 애저녁에 나와 언니간에는 세계대전이 일어나도 수십번은 일어났을테니까. 언니는 내 비명같은 분노의 외침을 듣고도 태연히 수줍은 웃음을 지으며 나지막히 말할 뿐이었다.
'음- 오늘이 나랑 남자친구랑 딱 1년째 되는 날이거든. 해서, 겸사 겸사 학교에도 슬슬 나랑 사귄다는거 이야기 할 생각인 것 같기도 하니까...'
아마 내가 만화 주인공이었고, 이 상황이 흔한 개그만화 같은 것이었다면 나는 여기서 바로 공중 2회전 돌려차기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이 사귄지 1년째 되는 날이고, 그 남자친구라는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평소에 양식을 가지고 행동하던 사람이라면 그 남자친구를 위해서라도 저런 꼴을 하고 학교에 가서는 안되는 것이며, 더우기 둘의 교제를 공공연히 밝히기로 작정했다면 더더욱 그래서는 안되는게 세간에서 말하는 상식이 아니던가. 난 그때 태어나 처음 진심으로 탄식이라는 걸 해봤다고 생각한다. 자기 세계가 지나치게 공고하다는 것도 이럴 때는 분명히 문제가 되는 것이로구나 하고. 그리고 혹시나 언니가 엄청나게 악의를 가지고 1주년 기념으로 남자와 헤어지려는건 아닌가 하는 매우 실례되는 생각까지 하고 말았다.
그렇게 내가 정신적인 탈진과 공황에 빠져 있는 사이, 어느새 언니는 얼마전 나에게 자랑스레 보여줬던 15센티미터짜리 굽이 달린 검정색 에나멜 플랫폼 부츠를 신고 학교로 줄행랑을 쳐 버렸고, 나는 얼마간 정신을 수습하느라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내가 정신을 차린 뒤 집안을 둘러보니 마치 태풍이라도 분 양, 혹은 도로시가 오즈에서 가지고 온 양 온통 난장판이 되어 어질러져 있는 상태였다. 대체 얼마나 기분이 들떠서 날개를 달고 날아가 버렸길래 사람이 저렇게 되는걸까? 일단 이 수라장을 정리하자고 생각하며 주섬주섬 바닥에 널린 옷가지들을 주워모으는 사이 문득 언니가 다니는 학교에 대한 것이 떠올랐다. 우리 학교의 1학년은 고등학교 4학년이랑 다른게 없어. 내가 지금 대학에 온건지 재수를 하는건지 하는 기분이 든다니까 라며 중얼대던 언니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설마 그렇게 죄어대는 학교에 다녀서 그렇게 된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런 학교에 저런 차림으로 가도 괜찮은걸까 하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기분이 되었다. 웬지 모르게 오늘은 언니의 치마를 길거리에서 벗기는 한이 있어도 언니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버렸다. 아니 막는건 너무 불쌍하니까 일단 머리부터 수습하고 화장만이라도 지우고 장신구라도 뗀 채 학교에 보내자고 마음속에서 타협을 했다. 그렇게 언니의 사랑이 파경을 맞을 위기를 구할 대책이 전부 세워졌을 때 나는 이미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방심상태가 된 채 오랫동안 자신을 방치하고 있었던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시계를 봤을 때는 5분 남짓. 우리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언니의 걸음으로 미루어 보면 10분 정도. 거기다 만약 혹시나 신께서 나를 도우셔서 버스가 늦게 오게 된다면 따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서 아무렇게나 티셔츠를 걸치고 구겨진 스니커에 발을 찔러 넣으며 진심으로 신에게 기도를 했다. 신이 있다면 제발 오늘 하루만 저를 좀 도와주세요 하고."
# by | 2007/09/14 09:51 | And She Said,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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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군// 구상중입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