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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She Said, ~ 까마귀와 소녀에 관한 진실

 
"문득 고개를 들자 까마귀가 나를 보고 있었다. 무심한 듯. 거만한 듯. 마치 내가 자신보다 하등하다고 생각하는 것 처럼 보였다. 그냥, 내 자격지심일지도 모르지만. 무시하고 가려 했지만 까마귀의 시선이 묘하게 나를 쫓고 있는 듯 해 신경이 쓰였다. 기분이 나빠졌다. 애써 고개를 돌리고 발을 옮겼다. 뒤에서 작게 푸득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보지 않았다.
 얼마가 지난 뒤 나는 연애를 시작했다. 깊고 어두운 눈이 매력적이고 대조적으로 하얀 피부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그는 상냥하고 배려심 깊어 그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고 있었다. 그의 눈은 몹시 진한 갈색으로 바닥이 없는 깊은 늪 같다고 몇번이나 생각했다. 나는 그 눈이 몹시 마음에 들었지만 때때로 소름이 끼칠 듯 무섭기도 했다. 마치 빨려들어갈 듯 날 홀리는 시선이었기 때문이다.
 그와의 연애는 길지 않았다. 길 건너편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웃고 있던 그가 갑자기 돌진해 온 차에 치였던 것이다. 검은 셔츠를 입고 단추를 열어 안에 입은 흰 티를 드러낸 채였던 그는 육중한 차체에 부딪혀 허공을 날았다. 펄럭이는 검은 셔츠가 마치 까마귀의 날개 같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늘을 날고 있던 그 때도, 떨어져 아무렇게나 널부러졌던 때도 그의 눈은 나를 향해 있었다. 빛을 잃은 그 눈은 더욱 그 깊이를 알 수 없었고 시선은 내 몸에 끈적하게 들러붙고 있었다. 거기에 사로잡힌 탓인지 나는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의 피가 바닥을 적시고 사람들이 시체에 모이는 육식벌레처럼 모여들어 웅성대기 시작했을 때도 난 그의 시선에 붙잡혀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난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의 죽음 이후 내가 처음으로 문 밖을 나선 것은 태양의 길이가 분명히 변화한 것을 실감하게 된 후의 일이었다.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내 기억에 비해 분명하게 퇴색해 있었다. 집을 나서서는 무작정 걸음을 옮겼다. 전혀 변하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그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태양은 조용히 산 너머로 기울고, 거리는 붉게 물들엇다. 퇴락한 빛깔의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나를 맞아주고 있엇다. 그 모든 것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며 만족스레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머리 위쪽 어딘가에서 푸득 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었다.
 내 시선이 멈춘 곳에는 까마귀가 앉아있었다. 내 시선을 무시하는 것 처럼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린 채 탁한 소리로 가악 하고 짧게 울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날 의식했다는 듯 서서히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눈이었다. 그저 천연히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서로 바라보았다. 얼마나 보았을까? 까마귀가 먼저 가악 하고 울며 정적을 깼다. 그리고 날개를 한번 크게 벌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문득 그 모습에 언젠가 잃어버려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그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검은 셔츠를 마치 날개처럼 펄럭이던 그의 마지막 모습이.
 그 뒤의 일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정신이 들어보니 내가 멍청하게 바닥에 아무렇게나 엉덩이를 대고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는 것과 어느샌가 사라진 까마귀가 내 머리를 어루만지듯 검은 깃털 한 장을 내 머리에 떨어뜨려 놓았다는 것, 그리고 그날 따라 밤하늘은 유난히 검고 깊어 마치 그의 눈 속에 빠져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사실만을 깨달았을 뿐이다."

by 제절초 | 2007/10/27 09:57 | And She Said,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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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Lmin at 2007/10/27 10:03
화자가 음... 뭐랄까, 성격이 쿨데레인 것 같아요..
Commented by 레놀도야지 at 2007/10/27 10:57
오싹하거나 무섭거나, 행복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따뜻한 이야기란 느낌입니다.
Commented by 제절초 at 2007/10/27 22:54
aLmin// 쿨데레라^^; 그렇게 보였나요^^;
레놀도야지// 네. 조금 밝게 써보려고 노력했어요^^;
Commented by February at 2007/10/27 23:50
왜 갑자기 그..센과치히로에 나오는 유바바 할머니가 생각나죠? ^^;;
Commented by 제절초 at 2007/10/28 05:32
February// 아니 유바바랑 까마귀도 무슨 연관이 있나요;ㅂ;
Commented by Lord at 2007/10/28 19:28
발단 전개 ..에서 끝난 기분(...)
Commented by 아르젠틴 at 2007/10/28 21:42
저 까마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Commented by 파르테노 at 2007/10/28 23:27
오 전에 말했던 까마귀 등장 와아아아 너무 좋아요! 나를 쪼았던 그 까마귀도...

Commented by 제절초 at 2007/10/29 00:31
Lord// 제 글이 늘 그렇지 않습니까.
아르젠틴// 글쎄 말입니다 'ㅂ'
파르테노// 음음. 나름 뒷 설정도 있는 이야기라서.(웃음) 좋아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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