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29일
And She Said, ~ 벼룩시장
"'야 그 전에 나랑 사귀던 걔 있잖아...'
친구가 불쑥 말을 꺼냈어. 어쩐지 이런 날 갑자기 만나자며 불러내는게 수상하다 싶었지. 분명 그 남자애와 무슨 일인가 있었던게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약간은 무성의하게 '응' 이라고 답했어. 친구는 찡그리는 것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닌 것 같은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지.
'으응. 기억 나? 전에 나랑 한번 엄청 싸우고 헤어졌던 걔.'
나는 그 남자애를 기억하고 있었어. 시원시원하고 잘 생긴 얼굴, 큰 키, 약간은 경박한 듯한 말투. 흔히 말하는 '잘 놀게 생긴' 애였던 걸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애였지. 어찌나 크게 싸웠는지 벌써 2년은 지난 것 같은데 나 조차 그 때의 일들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그러나 난 여전히 무심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어. 어차피 그런 기억같은건 가지고 있어봐야 귀찮기만 할 뿐이니까.
'걔가 어제 나한테 전화해서 그러는거야. 다시 사귀면 안되냐고.'
그것은 오늘 이 친구가 웬지 나에게 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던 말들 중에 하나였지. 그런 일 흔히 있잖아? 헤어졌던 남자친구가 다시 사귀자고 해서 친한 친구에게 고민 상담을 해 오는 예. 그렇지만 나는 비록 예상하긴 했지만 그 말을 듣고는 웬지 속에서 뭔가 탁 하고 파열음을 내는 것이 느껴졌어. 기분이 나쁘다고 해야 할까, 단순히 불쾌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기분이었지. 그런데 친구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 시작했어.
'진짜 기분 나쁘더라. 진짜 욕이나 한바가지 시원하게 퍼주고 싶었는데 내가 차마 애들하고 노는 중에 그런 말은 못하겠고, 진짜 딱 잘라서 거절했어. 걔도 아마 알 거야. 내가 기분 나쁘면 하는 말투. 알아 들었겠지 뭐. 미안하다고 그러고 끊었으니까.'
난 순간 이 친구가 왜 그 이야기를 거절했는지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어. 분명 2년 전, 아니 1년쯤 전까지만 해도 그 남자애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미련이며 애정이 남아서 호되게 고생했던 친구였으니까. 그래서 넌지시 운을 띄워 봤지. 보통 그럴 때 쓰는 말 많잖아. '왜 걔 제법 괜찮잖아.' 같은 말 처럼. 그러자 갑자기 이 친구는 인상을 확 찡그렸어. 꼭 종이라도 구기는 것 처럼 순간적이고 돌발적으로 말야. 그리고는 마치 고양이가 캬악 하고 짖는 것 처럼 말을 토하기 시작했지.
'야 뭐가 괜찮냐? 아 진짜 어제 진짜 기분 더러웠다니까. 야 생각해봐. 왜 걔가 나한테 어제같은 날 전화해서 다시 사귀자고 그랬겠냐? 목소리 들으니까 완전 채인 놈 목소리던데. 분명히 나 버리고 딴 년 이년 저년 사귀다가 다 별로인거 같으니까 혹시나 해서 나한테 전화한거야. 그게 뭔 소린지 알아? 난 이미 포장 뜯은 CD라 이거야. 음악은 듣고 싶고, 가게 가서 CD 살 돈은 없고, 요 며칠 들은 CD는 다 별로고 그러니까 전에 듣던 CD나 꺼내 듣자는 심보지 뭐. 진짜 고약하지 않아? 내가 전에 지랑 사귀었으면 사귀었지 완전 날 중고 취급하는거잖아. 이미 한번 자기가 썼던거니까 좀 쉬워보인다는거 아냐. 웃기지 않냐?'
친구는 정말로 으르렁거리는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맹렬히 화를 내고 있었어. 정말,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그렇게 화낼만한 일인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기분도 들었지. 의외로 설득력이 있더라고.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그 남자애를 생각해 봤어. 과연 그 남자애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걸까?
그 뒤로 얼마간 수다를 떤 뒤 난 친구를 보내고 혼자 까페에 앉은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 사실은 얼마 전부터 나한테 수작을 부리다가 여의치 않게 되자 조금씩 나한테 소홀해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듯한 남자애가 있었거든. 그래서 이번엔 모처럼 내 쪽에서 불러주기로 한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애가 까페에 도착했고, 조금 아까 친구가 앉아 있던 그 자리에 앉아 즐거운듯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지. 무척이나 반가워하는 얼굴이었어. 사실 그도 그럴 것이, 내 쪽에서 불러준 건 처음이었는데다가, 그 전까진 내가 좀 건성건성 대하는 편이었으니까.
그리고 난 마치 주인이 놀아줘서 기뻐하는 듯한 그 남자애를 보며 입을 열었어.
'...어제 걔한테 전화했다며? 뭐라디?'
그때의 그 표정이라니. 난 아마 상당히 오랫동안 그 얼굴을 잊을 수 없을거야. 그리고 기분이 나쁠 때나 우울해질 때마다 그 표정을 떠올리며 혼자서 키득거리겠지. 정말로, 날 유쾌하게 만드는 얼굴이었어. 정말로 말야."
# by | 2007/10/29 09:40 | And She Said,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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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녀석, 싫어요!
아무데나 들이대면 안된다니까요-
시우// 음? 누가 기분 나쁘신거예요 'ㅂ'?
카오리// ...사람은 감이 아니거든.(...)
February// 아하핫 재미있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나인볼// 후... 되는 놈들은 되지만.(응?)
레놀도야지// 음. 갑자기 생각난 표현이라서요. 어울리나요?
그 역할이 여자애라면 용서가 되....나????(갸웃?)
그렇다고 '나' 역이 남자라면, 왠지 그것도 기분이 상쾌발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