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1월 07일
And She Said, ~ 어이구 우리 공주님, 그래 아빠 잘 있다
"스산한 바람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아바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람이 물처럼 냉기를 실어와 물들듯 몸에 냉기를 스미게 한다. 살짝 거칠게 피부가 일어난 입술을 혀로 축이며 조금은 초조하고 얼만큼은 자포자기한 듯한 마음으로 신호가 끊어지기만을 기다린다.
쩔꺽 하고 신호가 잘려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부르르 떨리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가 달싹거리듯 조심스레 열었다.
'...아빠야...?'
신음하듯 말하는 내 목소리가 우스웠다. 수화기 너머에서 울리는 아빠의 목소리는 살짝 가래가 낀 듯 거칠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목소리를 좋아한다. 아빠의 목소리는 거칠지만 다정했다. 전화기를 통해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꼭 아빠가 나를 안아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조금 마음이 놓였다.
'으응. 그래서 있잖아...'
응석을 부리듯 말꼬리를 늘려본다. 어쩐지 말하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안정되어 간다. 아빠는 다시금 목소리로 나를 안아주고, 두툼하고 따뜻한 목소리를 내 머리에 얹는다. 낮고 그르렁거리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감고 정리도 안 된 말을 아무렇게나 투덜거리듯 주워섬기며 아무렇게나 자리에 앉았다. 엉덩이로 전해오는 서늘함에 무릎을 모아 팔로 안았다.
'있잖아 아빠, 나...'
눈을 감은 채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빠의 모습을 그려 본다. 남색 점퍼를 입은 아빠, 빛바랜 회색 바바리를 입은 아빠, 갈색 스웨터를 어색하게 입은 아빠, 모든 아빠가 담배냄새 섞인 체취를 풍기며 피곤한 모습으로 힘차게 웃고 있었다.
'아빠... 나... 나...'
부드럽지만 서툴게 나를 달래는 아빠의 체취가 느껴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웬지 오늘은 아빠가 실수로 면도를 하지 않은 것만 같았다. 거뭇해진 턱의 까끄러움이 느껴지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났다. 그래서 더 많이 눈물이 나왔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무튼 이야기 했다. 마구, 되는대로, 두서없이 푸념을 쏟아놓았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우리 아빠는 무적이니까. 유치하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응... 응. 아빠도, 아프지마. 나도 잘 있을게.'
조금 어리광부리듯 혀짧게 말해본다. 아빠와 한참을 이야기 한 뒤에는 언제나 그렇듯 어색한 인사를 한다. 회자정리라고 했건만 전화건 데이트건 마무리하는 일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아빠를 귀찮게 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전화를 끊었다. 마지막까지 아빠는 내 걱정을 했다. 바람이 차니 감기 조심하라고. 나는 살짝 웃었다. 아빤 내 걱정 할 때가 아니잖아 하고.
전화를 끊고 문득 하늘을 보았다. 한가닥 마른 풀이 날리는 모습이 쓸쓸했다. 아직 눈가를 적시고 있어 아프도록 차가운 눈물을 마찬가지로 딱딱하고 빨갛게 식어있는 손으로 쓱 닦아낸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옷에 붙은 마른 풀을 대강 털어내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봉긋한 무덤을 덮은 떼 위에 비죽 솟아나온 긴 풀이 까닥하고 머리를 숙인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쿡 하고 웃었다. 웬지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려 보았다.
'아빠, 그럼 나중에 또 올게.'
여전히 차가운 바람이 목덜미를 스쳐 옷을 여미었다."
# by | 2008/01/07 08:34 | And She Said,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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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젠틴// >ㅅ<;;; 민감하게 분위기를 읽으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