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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She Said, ~ 좋아, 세계를 구하겠다는 너희를 흉내내주지!

 

"'내겐 재미있는 친구가 있어요.'

 그녀의 첫마디였다.
 어두컴컴한 바의 한 구석에서 요염한 손짓으로 컵을 쥔 채 색정적이기까지 한 붉은 입술을 벌리고 리큐르를 흘려넣은 그녀는 살짝 치켜 올라간 눈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살짝 적셔진 입술꼬리가 움직이는 모습에 문득 가슴 언저리가 쿡 하고 쑤셨다. 그녀는 살짝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며 말을 이었다.

 '처음 만난건 중학교 때였지요.'

 눈이 경련하듯 떨리는 것이 분명히 보였다. 마스카라로 치장된 눈썹이 펄과 섬유와 함께 불빛에 반짝 하고 빛났다.

 '그 친구는 참 수수했어요. 눈에 띄지도 않았죠. 그저 있으면 있나보다 하는 그런 친구였어요.'

 그녀는 잔을 들어 입술색과도 닮은 붉은 액체를 살짝 머금었다. 리큐르에 젖어 번들거리는 입술이 아름답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여름방학이 지나서부터 갑자기 변화가 찾아왔어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처럼요. 나날이 예뻐지고, 눈에 띄는 아이가 되었고 금새 우리 반의 인기인이 되었죠. 누구도 그 변신을 싫어하거나 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반감을 가졌던 애들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애들도 점차 그 친구를 좋아하게 되었죠.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의 그녀는 정말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순수하게 의구심에 찬 표정이었다. 무구한 여중시절의 그녀는 분명 그런 얼굴로 친구를 바라보고 있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간 뒤에도 그 친구는 여전히 화려한 인기인이었지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갑자기 다시 수수해지기 시작했어요. 옛날같이 눈에 띄지 않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단정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는 맹렬히 공부를 시작했어요. 신기할 정도로 성적은 쭉쭉 올랐고, 금새 학교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우등생이 되었죠. 난 그런 그 애가 너무 신기했어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괴로운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입매 만은 부드럽고 다정해서 마치 뭔가를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어느 날인가 물어봤어요. 어떻게 된 거냐고. 그러자 그 친구는 배시시 웃으며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그 웃는 얼굴은 내가 처음에 보았던 그 애의 얼굴 그대로였죠. 친구는 놀라운 이야기를 해줬어요. 그러니까, 흉내를 냈다는 거예요. 인기인이라던가, 학원이나 학교의 우등생들을. 난 너무 신기했어요. 그런게 흉내를 낸다고 되는 일인가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 직설적으로 전해져 왔다. 나 역시도 그런 것들이 흉내를 낸다고 되는 일인지는 알 수 없다. 대개 흉내를 낸 결과는 엉망이 될 뿐이었으니까. 나 역시 그랬고. 그렇지만 그녀의 친구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대체 어떻게 했던 것일까? 그런 내 생각이 얼굴에 드러났던 것일까. 그녀가 문득 날 보며 장난스레 미소짓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웬지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을 보인 것 처럼 마음 한 구석이 거북했다.

 '아무튼 그 친구는 그 뒤로도 몇번이나 변신을 거듭했지요. 대학에 가야 할 때는 우등생을 흉내내 좋은 성적을 얻었고 대학에 간 뒤에도 과의 인기인들을 흉내내어 가며 눈에 띄는 존재가 되었어요.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금새 유명 대기업에 취직했고, 취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남자와 결혼했지요. 분명 그 남자가 좋아하는 어떤 여자를 흉내냈던 걸거예요. 그렇더라도 그의 마음을 뺏은건 그 애 자신의 능력이었겠지만요.'

 거기까지 말을 하고 난 그녀는 아까완 달리 약간 거친 손놀림으로 리큐르를 입에 쏟아넣었다. 약간은 쓸쓸해 보이지만 체념한 듯한 그 눈빛과 표정이 조금이나마 그녀와 그 친구의 관계를 짐작할만 하게 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도수가 낮지도 않은 술을 마셔서인지 아까보다 얼굴이 상기된 그녀는 살짝 표정이 풀어진 채 말을 이었다.

 '처음 만난 그 날 이후로 그 애의 인생은 그야말로 승승장구였어요. 나도 어디가서 빠진다는 말은 안 들었지만 그애가 너무 화려해서 기가 죽곤 했죠. 그렇지만 난 조금 자존심이 있었어요. 그래봐야 난 진짜고 그 애는 가짜다 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어느날엔가 술기운을 빌어 그 친구에게 말했어요. 넌 대체 언제까지 남의 흉내만 내고 살거냐고. 술을 마신 탓인지 이야기가 술술 나왔죠. 난 그 애가 그런 일에 컴플렉스 같은걸 갖고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그녀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기이한 웃음을 지었다. 술에 물든 얼굴과 붉게 젖은 입술이 미소와 어울리며 턱없이 헤픈 얼굴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다만, 조금 쓸쓸해보이는 눈빛이 그 표정을 희석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입술 때문인지 묘하게 코 아래의 얼굴만이 살아있는 것 처럼 보였다.

 '친구는 바보같은 소리 말라는 듯 웃었어요. 그러면서 이야기 했죠. 의태가 뭔지 아냐고. 의태하는 동물은 그 자체가 진짜 삶이라고. 자신도 의태하며 살고 있지만 틀림없이 자기 자신인거라고 말했지요.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말을 멈춘 그녀는 부끄러운 듯한 미소를 짓는 얼굴로 변해 있었다. 그런데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어째서 그 친구는 그녀를 흉내내지 않았던 걸까? 그녀는 평범하기 때문인걸까? 그렇지만 아까는 자신도 화려한 편이었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내 생각을 알아챈 것인지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친구의 스타일을 이해한 나는 문득 자존심이 상했어요. 난 한번도 친구가 내 흉내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었거든요. 이런거에 자존심을 세울 필요가 있겠냐는 싶긴 해도 난 알고 싶었어요. 나도 제법 잘 나간다 하는 기분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묻자 그 친구는 아까보다도 더 놀란 듯한 얼굴로 내 팔을 찰싹 때리며 웃었어요. 그리고는 깔깔대며 말했죠. 바보같은 말 하지 말라고. 너를 흉내내면 넌 더 이상 내 친구가 아니게 되는거 아니냐고요. 난 솔직히 그때 너무 놀랐어요. 그리고 무척이나 기뻤죠. 정말로요...'

 어느새 그녀의 눈은 아까보다 더 빛나고 있었다. 촉촉한 빛이었다. 그 모습은 어느샌가 순수해져 아까의 농염함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녀는 수줍게 미소지었고, 나는 모른 척 그녀에게 주스 한잔을 내밀었다. 그저 그녀가 귀엽다고 생각했고 부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by 제절초 | 2008/02/28 09:27 | And She Said,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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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PERIDOT at 2008/02/28 09:34
정말 좋은 느낌입니다.
수줍은 미소와 귀여움...
Commented by 희정 at 2008/02/28 11:19
의태하는 동물은 그 자체가 진짜 삶이라고.<-와우.; 조금 무섭네요.
그래도...
너를 흉내내면 넌 더 이상 내 친구가 아니게 되는거 아니냐고요.<-이 부분에서 씨익..//ㅂ//
Commented by 파닭 at 2008/02/28 11:57
...꺄아 저도 바 가면 이런 여성분 만날 수 있는건가요;ㅁ; 이번 화자 좀 부럽네요;ㅁ;
Commented by 싹싹이 at 2008/02/28 14:36
=_=;; 흉내 낸다고 될 수 있다니, 무섭네요.
제 이글루에 오셔서 글 남기신 것,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자주 올게요!>_</
Commented by 제절초 at 2008/02/28 23:15
Peridot// 후후. 사실 저 친구와 저 아가씨는 삼각관계였...(...)
희정// 음. 마지막은 좀 노렸습니다!? ...뭐, 의태하는 동물도 삶에 진지하기 때문에 의태하는거 아니겠어요?
파닭// ...아무 바나 가면 큰일난다 얘야(응?).
싹싹이// 네. 사실 그게 포인트.(...) 아무튼 방문 감사드립니다^-^
Commented by 히카리 at 2008/02/29 08:50
섹시하고 귀엽고 순수하고 저 남자 그녀한테 넘어갔군요.[...]
친구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계속 표정이 바뀌는 그녀가 사랑스러운걸요.+_+
Commented by 하이얼레인 at 2008/02/29 22:14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Lord at 2008/03/01 01:59
호러 이야긴줄 알고 긴장하면서 읽었것만.. orz
Commented by 제절초 at 2008/03/01 03:09
히카리// ...어!? 나이차가 많이 날텐데요(...). 사랑스러워해주셔서 감사>ㅅ<
하이얼레인// 에헤헤//ㅂ//
Lord// 저라고 괴담만 쓰는건 아니라구요;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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