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15일
And She Said, ~ Sister, My Sister. 02
"나는 다시 한번 물었어. 굳이 같은 이야기를 두번이나 듣고 싶었던 건 아닌데. 습관적인 확인이었던 것 같아. 만화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러는 것 처럼. 꼭 충격적인 장면 직후에 그 장면을 반복해주잖아? 난 독자가 아니라 당사자 였는데. 같은 충격을 두번이나 되풀이 해서 아예 신경을 마비시킬 생각이었을까. 그래서인지 두번째로 들었을 때는 처음처럼 풍경의 빛깔이 반전하는 느낌은 아니었어. 오히려 처음 들었을 때 보다 더 현실성이 결여된 기분이었달까. 처음 들었을 때는 들은 이야기를 온전히 현실로 치부하고 충격을 받았던거였지만 두번째 들었을 때는 '이건 현실이 아니야' 라는 생각을 깔고 듣게 되었거든. 이성을 찾았다는 반증이었는지도 몰라. 그리고 나는 그렇게 수습한 이성으로 간신히 말을 만들어냈어. 눈 앞의 '여동생'에게 할 말을.
분명히 내 눈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여동생이었어. 적어도 겉모습만은 완벽하게. 길고 하늘하늘한 팔다리, 뽀얗고 투명한 피부, 툭 터질것 처럼 체리빛으로 부푼 입술, 갈색 구슬같은 눈동자. 어디를 보나 분명한 여동생이었어. 그러나 사실은 아니었던거야. 아니라고 여동생 자신이 부정하고 있는거야. 역겹고 소름끼치는 기분나쁜 반전이지.
그러나 여동생의 입에서 나온 부정의 말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어. 자신을 부정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나와의 혈연관계와 오래전 죽었다고 믿은 남편의 생존과 지금의 의학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수술과 여동생의 육체에 대한 존중을 차례로 부정해 나갔지. 그와 동시에 나를 이루고 있던 어떤 것들도 하나 하나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어. 내가 파괴당하고 있었던거야. 마치 배가 갈리고 솜을 억지로 끄집어내어진 인형처럼.
그렇게 부정을 마친 여동생은 이번엔 긍정하기 시작했어. 전 남편으로서의 자신과 새롭게 태어난 여성으로서의 자신, 더 이상 여동생이 아닌 나와 새로운 관계를 맺기 원하는 자신, 확정된 여동생의 죽음, 기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의학적 성과들을. 그리고 그것으로 깨지고 무너져 텅 비어버린 내 안에 새로운 무엇을 채워넣고 있었어. 하얗고 울퉁불퉁해서 기분나쁘고 불길한 냄새가 나는 어떤 것들을.
'그녀'의 설명을 전부 듣고 나니 다리에 힘이 빠져서 더 이상은 서 있을 수가 없었어. 마침 옆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식탁 의자에 몸을 내던지듯이 앉았지. 고개를 힘겹게 들어서 이젠 여동생이라고도, 남편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모호한 존재가 되어버린 그녀를 보았어. 징그러울 정도로 매끄럽고 친절한 웃음을 띠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녀는 탄력있는 몸짓으로 몸을 돌려 주방으로 들어갔어. 나긋나긋하고 산뜻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묘하게 몸도 마음도 풀어지는 것 같았지. 나도 모르게 입술 끝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꼈어. 이젠 아무래도 좋다, 그런거. 의자 아래로 몸이 빠져내려가는 기분이 되었지.
그때였어. 문득 발 아래로 모래가 쏟아져 내리는 기분이 들기 시작한건. 발바닥에 뚫린 커다란 구멍을 통해 쏴- 하고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흘러내리듯 내 몸과 마음이 새하얀 모래가 되어 바닥으로 쏟아지는 것 같았던거야. 그러면서 점점 몽롱한 기분이 되었어. 마음이 편안해지고, 몸이 사라지는 것 처럼 느껴졌지. 아무것도 이해한 것은 없었고 이해할 수도 없었지만 그냥 이해했다는 마음이었어. 신경 어딘가가 끊어져버린 것 처럼, 다 포기해버린건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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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나름 11월 8일자의 연작인데 그런 생각이 안 들 정도로 비약이 심한 모양이다.
분명히 내 눈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여동생이었어. 적어도 겉모습만은 완벽하게. 길고 하늘하늘한 팔다리, 뽀얗고 투명한 피부, 툭 터질것 처럼 체리빛으로 부푼 입술, 갈색 구슬같은 눈동자. 어디를 보나 분명한 여동생이었어. 그러나 사실은 아니었던거야. 아니라고 여동생 자신이 부정하고 있는거야. 역겹고 소름끼치는 기분나쁜 반전이지.
그러나 여동생의 입에서 나온 부정의 말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어. 자신을 부정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나와의 혈연관계와 오래전 죽었다고 믿은 남편의 생존과 지금의 의학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수술과 여동생의 육체에 대한 존중을 차례로 부정해 나갔지. 그와 동시에 나를 이루고 있던 어떤 것들도 하나 하나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어. 내가 파괴당하고 있었던거야. 마치 배가 갈리고 솜을 억지로 끄집어내어진 인형처럼.
그렇게 부정을 마친 여동생은 이번엔 긍정하기 시작했어. 전 남편으로서의 자신과 새롭게 태어난 여성으로서의 자신, 더 이상 여동생이 아닌 나와 새로운 관계를 맺기 원하는 자신, 확정된 여동생의 죽음, 기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의학적 성과들을. 그리고 그것으로 깨지고 무너져 텅 비어버린 내 안에 새로운 무엇을 채워넣고 있었어. 하얗고 울퉁불퉁해서 기분나쁘고 불길한 냄새가 나는 어떤 것들을.
'그녀'의 설명을 전부 듣고 나니 다리에 힘이 빠져서 더 이상은 서 있을 수가 없었어. 마침 옆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식탁 의자에 몸을 내던지듯이 앉았지. 고개를 힘겹게 들어서 이젠 여동생이라고도, 남편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모호한 존재가 되어버린 그녀를 보았어. 징그러울 정도로 매끄럽고 친절한 웃음을 띠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녀는 탄력있는 몸짓으로 몸을 돌려 주방으로 들어갔어. 나긋나긋하고 산뜻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묘하게 몸도 마음도 풀어지는 것 같았지. 나도 모르게 입술 끝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꼈어. 이젠 아무래도 좋다, 그런거. 의자 아래로 몸이 빠져내려가는 기분이 되었지.
그때였어. 문득 발 아래로 모래가 쏟아져 내리는 기분이 들기 시작한건. 발바닥에 뚫린 커다란 구멍을 통해 쏴- 하고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흘러내리듯 내 몸과 마음이 새하얀 모래가 되어 바닥으로 쏟아지는 것 같았던거야. 그러면서 점점 몽롱한 기분이 되었어. 마음이 편안해지고, 몸이 사라지는 것 처럼 느껴졌지. 아무것도 이해한 것은 없었고 이해할 수도 없었지만 그냥 이해했다는 마음이었어. 신경 어딘가가 끊어져버린 것 처럼, 다 포기해버린건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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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나름 11월 8일자의 연작인데 그런 생각이 안 들 정도로 비약이 심한 모양이다.
# by | 2006/11/15 10:51 | And She Said,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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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절초님도 한번 보시면 좋을듯합니다^^
그 만화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마쯤에 아기때 있떤 구멍을 수술로 인위적으로 다시 뚫어서 제 6감을 다시 찾게 해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그린겁니다.
좀 기기괴기한것도 보이긴하지만(-_-;) 한번정도 볼만하다고 생각됩니다;
파닭// 음. 그치만 그렇게까지 절실히 만나길 원한 사이는 아니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