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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She Said, ~ 애정행각 18제 : 숏키스

 
"이건 전에 내가 아는 남자애가 해 준 이야기야. 그 애는 예전에 시골에 살았었는데 말야, 그 때 있었던 일이라고 하더라고.
 그 있잖아, 황순원의 소나기. 국어책에도 많이 나오는 그 소설, 너도 기억 나지? 어떻게 생각하면 그거랑 비슷해. 어렸을 적에 죽 시골에 살았던 그 애가 서울사람을 본 건 그 때가 처음이었대. 어쩌면 그렇게나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지, 듣고 있던 나도 그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니까.
 그 남자애는 얼굴이 하얬대. 가느다란 머리카락은 까맣고 윤기있었고, 새하얀 피부는 통통하게 살이 올라서 만져보면 뽀송뽀송하게 부드러웠다고 하더라. 속눈썹은 남자애 답지 않게 길었고, 그 아래의 눈동자는 까맣고 반짝거리는게 꼭 인형같았대. 코는 약간 낮지만 귀엽게 솟아있었고 입술은 다른 애들보다 조금 얇은 편이었다고 하더라. 어쩌면 그렇게 자세히 기억하는지 몰라.
 서울에서 왔다는 남자애는 친척집에 놀러온거였대. 집 안에서는 혼자 심심하니까 밖에서 돌아다니다가 그 애를 만난거야. 두 사람은 금방 친해졌대. 서울 애는 심심하니까 자기한테 말 걸어주는 그 애를 반가워 했던거고, 그 애는 서울 애가 너무 예쁘게 생겨서 신기하기도 하고 호기심도 생겨서 반가워 했던거겠지.
 그 둘은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대. 함께 들을 뛰어다니고, 산을 뛰어다니며 모든 것이 생소한 서울 애에게 짐짓 잘난체 하며 이런 저런 것들을 가르쳐주고, 서울 애는 그 애가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 신기한 도시의 이야기를 잔뜩 해 줬다지 뭐야. 그러면서 둘은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세상에 둘도 없이 애틋한 사이가 되어갔던거야. 그저 5분이라도, 그저 열발짝이라도 더 같이 있고 같이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충만해지고 기쁨이 흘러넘쳤던거지. 정말 온 산과 온 들과 개천의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며 해 뜰때부터 만나 해가 넘어가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헤어짐을 반복했었대.
 그러나 늘 즐거운 시간은 빨리 흐르고, 만났던 사람은 언젠가는 헤어지는 법이랬잖아. 그저 시골에 놀러온 것 뿐인 서울 애는 오죽했겠어? 일주일이 7분처럼 지나가니 어느샌가 서울로 돌아갈 때가 다가와 버린거야. 이미 가족이나 된 것마냥 정이 들어버린 두 사람은 얼마나 안타깝고 얼마나 아쉬웠을까. 그 때만큼은 해가 솟아오르는 것 부터 넘어가는 것이 싫고 달이 얼굴을 보이는 것 조차 짜증이 날 정도였대. 날이 가면 둘은 헤어져야 했으니까 말야.
 결국 서울 애가 돌아가는 날이 왔고, 무정한 자동차는 사람들을 뒤로 한 채 움직이기 시작했대. 천천히 시골의 좁은 길을 뒤뚱거리며 굴러가는 자동차를 멍하니 바라보던 그 애는 갑자기 자동차를 뒤따라 달리기 시작했어. 마지막으로 얼굴이나 보며 한번이라도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던거야. 작별인사는 이미 끝났지만 거기서 마음을 끊을 수 있다면 이미 어린애는 아닐테니까. 점점 자동차는 속력을 내기 시작하고, 어린애의 작은 폐는 이미 그 능력의 한계에 도달했어. 그렇지만 멈추기는 싫었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 있고 싶은 기분이었다고 해. 그런데 그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는거야. 자동차가 점점 속력을 줄이기 시작하더래. 문득 자동차와의 거리가 가까워진 것을 느낀 그 애는 정신없이 마지막 힘을 내서 자동차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대. 그리고 자동차가 멈추었을 때 쯤 그 애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무릎에 손을 짚고 간신히 자동차 트렁크 께에 도착해 있었다고 하더라. 행여나 조금 더 있어줄까 하는 될 리 없는 소망을 안은 채 터질 것 같은 심장을 간신히 추스르며 고개를 들자 뒷 좌석의 창문이 열린 것이 보였다고 해. 그리고 그 작은 창 밖으로 서울 애가 아쉬운듯 서운한듯 기쁜듯 온통 듯 한 표정이 범벅이 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는거야. 그 때의 기쁨이란 어떻게 말로 할 수가 없었대.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되어서 서울 애에게 다가간 그 애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고 뭐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고 했어. 그 때, 문득 서울 애가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대. 그래서 그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말을 잘 듣고 싶어서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가까이 대자 갑자기 서울 애가 고개를 살짝 들어서는 입을 맞췄다는거야. 그 애는 지금도 잊을 수 없대. 약간은 까칠하지만 부드러우면서 그날 점심에 먹었던 밥의 냄새가 남아있는 그 입맞춤을. 놀라움에 구름처럼 하얗고 뿌연 뭔가가 꽉 차버린 자신의 머리를. 그리고 입술과 입술 사이를 미끄러지며 딱 하고 부딪혔던 서울 애와 자신의 작은 앞니를.
 그 애가 멍하니 있는 사이 어느샌가 창문은 닫혀버리고, 서울 애가 탄 자동차는 부끄러운 듯 순식간에 속력을 내서 멀리 멀리 멀어져 갔대.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먼지와 누런 바큇자국만 남아 있었다더라. 그제서야 그 애는 그 흔한 집주소조차 교환하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땅을 굴러봤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지. 그 뒤로는 영영 그 애를 만나지 못했대. 그렇지만, 가끔 술을 마시고 있을 때면 떠오른다더라. 그 작고 보드라운 입술이. 그 달처럼 새하얬던 얼굴이."

by 제절초 | 2007/03/08 08:04 | 애정행각18제(完)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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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신세타 at 2007/03/08 08:44
오오~~!! 정말 Boys Love~~군요~~
Commented by 크르 at 2007/03/08 09:14
헤에...전 시골아이도, 서울아이도 아니었습니다.[.....]

...고향은 의정부.[...] 경기도에요.
Commented by 제절초 at 2007/03/08 22:12
신세타// 노렸습니다.(웃음)
크르// ...네. 의정부민이시군요. -ㅂ-
Commented by Lord at 2007/03/09 15:32
이 이야기 너무 좋다 ;ㅁ;

근대 다시 읽어보니 BL이네요;;;
뭐 어린시절이면 남녀구분이 없었으니 상관없나..
Commented by 제절초 at 2007/03/09 21:32
Lord//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훗훗. 맘먹고 쓴 BL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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