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31일
환월루기담

당신은 '환월루(幻月樓)'를 알고 있습니까?
달이 뜨지 않는 밤에 술 속에 부영(浮映)하는 달과 함께 하는 곳.
사실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달과 젊은 악사의 기담(奇譚)은 닮은 곳이 있습니다.
두개의 몽상이 겹치는 곳, 환월루에 어서오세요.
...라는 이유로 오늘 아침의 포스팅은 이마 이치코 씨의 '환월루기담(幻月樓奇譚)' 되겠다.
원래 한 작가의 작품을 줄줄이 연이어 포스팅 하는 것은 내켜하지 않는 바이지만 예의 '다시읽기'를 하다보니 재미있어져서 이렇게 된 것, 어쩔 수 없다.
일단 이 만화는 처음 4페이지부터 먹고 들어가는데, 주인공인 쇼이치로 때문이다.
얼굴은 관옥같고 입술은 붉기가 앵두같으며 콧날은 고봉준령같은데다 번듯한 풍채의 이 사내는 사실 바보이기 때문이다.(...)
뭘 생각하는건지,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바보. 그것이 쇼이치로다.
그리고 마치 하나야마 카○루 처럼 온 몸을 칼자국으로 도배한 수수께끼의 악사 요자부로.
노래도 연주도 그저 그렇지만 기묘한 이야기만은 천하제일.
...그래 구구절절한거 다 떼고 청년 실업가 바보 공이랑 예술계 안경 수의 이야기 이다.(너무 떼었나...)
제목답게 내용 전개는 내가 좋아하고 좋아하고 또 좋아해서 일백번 고쳐도 좋아하는 '기담' 스타일.
(내 생각이지만 이마 이치코 씨가 교고쿠도 시리즈를 그려줬으면 좋겠다. 정말 어울릴텐데.)
거기다가 남자 뿐만 아니라 여자도 어찌나 그렇게 예쁜지 그냥 혼이 나간다.
내용은 안 보고 그림만 보면서 넘어가도 그저 즐거운 만화랄까.
섬세하면서도 과격하게 변화를 거듭하는 인물들의 표정변화만 봐도 웃음이 멈추지를 않는다.
그런 다양한 표정묘사는 아마도 이 사람의 장기중의 장기라고 할 수 있겠지.
유사한 개화기 시대물로서는 니시 케이코 씨의 '3번가의 기적'이 있는데, 과장되고 해학적인 니시 케이코 씨에 비해 이마 이치코 씨의 그림은 최소한의 '품위와 양식'은 지키려고 하는 은은한 해학이 있다.
(어느쪽이 더 좋냐 라고 말하면 답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나는 이마 이치코 씨의 편을 들 것 같다. 그 포근하고 따스한 분위기 쪽이 더 내 취향이니까.)
아무튼, 이런 즐거운 기담.
휘영청 보름달이 뜨면, 환월루에나 놀러가볼까나-
# by | 2006/12/31 10:10 | Boy`s Love | 트랙백 | 덧글(8)
2006년 12월 30일
꽹과리

어제에 이어 매우 추운 30일의 아침은 연말 답게 호러물로 시작해보자.
오늘 이야기 할 동인지는 꽹과리의 6호 회지 'Horror'이다.
1995년 2월 8일 창단되어 1999년 3월 4일 제 6호 회지를 발매한 꽹과리는 그닥 눈에 띄는 동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동안은 '묻혀있었다'고 해야 옳을 지 모른다.
1990년대 중반과 후반 동인계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이런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1990년대 후반까지의 동인계는 절대다수가 BL계열이었다. 거의 하나의 대세이자 동인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단 하나뿐인 절대원리라고 해도 좋을정도였다.
이것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 후반부터이다.
조금씩 동인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조금씩이나마 다양한 스타일의 동인지들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이것은 아마도 동인지를 만드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낮아지기 시작한 것과도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튼간에.
1999년도에 나는 이 책을 샀다.
창작회지인데다가, 호러 아닌가? 난 당시에는 호러를 그닥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은 독특한 테마고 해서 무작정 집어들었던 것이다.
회지 안에서 한 사람이 이렇게 써놓은 것을 보았다.
"만화를 그리는 사람으로써 꼭 해보아야 할 장르가 호러다. 라고 배웠는데,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호러물 만큼 감각적이면서 자극적이고 과장된 과감한 연출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장르는 흔하지 않으며 호러물 만큼 사람의 심리변화와 감정묘사를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르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들의 연습을 위해서라도 만화를 하는 사람은 꼭 호러를 그려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공감을 했다.
이 회지에서 그들이 다루고 있는 호러들은 여러가지가 있다.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라쇼몽(羅生門)'을 만화화 한 것도 있었고, 타인과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공포, 정신병으로 인한 살인과 방어기제가 가지고 오는 반전 공포, 이중인격 등 일반적으로 생각할 만한 여러가지 것들을 가지고 참 열심히도 회지를 꾸려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회지 내에 동호회에 대한 정보가 너무 빈약하다는 것과, 손글씨 원고가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는데도 들어가 있다는 것, 회지의 편집 자체가 그닥 짜임새 있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동인지를 사는 사람으로서 동인지가 마음에 들면 동호회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 당연한데도, 그에 대한 정보를 간단하게나마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또한 워드프로세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손글씨로 작성한 원고를 넣을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것인데, 아마도 편집일정에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지나치게 '만화'에만 충실하다보니 편집 자체가 너무 여유 없이 빡빡해 답답하다는 기분이 든다. 동인지도 하나의 책이기 때문에 어느정도는 숨을 돌려가며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부분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지금이야 활동하고 있지 않겠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었던 이 책에 대한 그리움을 아직도 갖고 있을까?
최근엔 호러물 동인지가 좀처럼 나오지 않아 아쉽다.
# by | 2006/12/30 09:23 | Boy`s Love | 트랙백 | 덧글(6)
2006년 12월 29일
B급 미식가 클럽

2006년의 끝이 보이는 추운 아침, 오늘의 포스팅은 이마 이치코 씨의 'B급 미식가 클럽' 이다.
표지의 좌측 모델이 주인공의 선배인 오니즈카 씨.
표지의 우측 모델이 주인공인 요시노 군이다.
(2살 차이긴 한데 어쩐지 요시노 씨 라고 하면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요시노는 이마 이치코 씨 만화의 주인공 중에서도 이례적인 미형이다.
선이 곱고, 얇은 것이 마치 '키다리아저씨들의 행방'에서의 카오루와 비슷한 부류라고 해야 옳을까.
물론 체격은 확실히 갖추어져 있기는 하지만 확실히 저 얼굴은 이마 이치코 씨의 만화 주인공으로서는 독특하다.
(작가도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인지 때때로 그의 턱을 사각으로 그려놓기도 한다. 단순한 데생 실수인가?)
책은 B급 미식가 클럽 + 미소(후기 작품) 와 그 외(전기 작품)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역시 전기의 작품은 아직 그림도 산만하고 내용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무거운 탓도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건 '가볍고 유머러스 한' 이마 이치코 씨의 작품이니까.
잠깐 B급 미식가에 대해 말해보면, 사실 누구나 B급 미식가에 해당할 거라고 생각한다.
늘 먹는 빵이지만 자신이 특히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어서 이 빵은 이 브랜드의 것 밖에 먹지 않는다고 하는 그런 고집.
(일본이 빵종류가 워낙 많아 이런 집착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한국도 영 불가능한건 아니다.)
일류 음식에 대한 미식은 아니기에 B급이지만, 그래도 거기에는 그 사람의 미학과 고집이 같이 스며 있는 것이다.
나야 정 없으면 대충 먹고 마는 편이지만, 그래도 따질 수 있는 상황이면 따지게 된다.
감자칩은 농○의 것밖에 먹지 않는다던가, 옥수수 크림빵은 샤○의 것이 최고라던가. 뭐 이런거.
쓰잘데기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런 미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소중한 가치다.
아무튼 간에.
이 B급 미식가 클럽도 꽤나 꼬여가는 관계를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어 즐겁다.
선배는 얼굴도 무섭고 이름도 무서운데다 무뚝뚝하고, 빵은 시미즈야의 카레빵밖에 먹지 않는다.
그래서 후배는 선배 앞에선 늘 주눅들고 두근두근하고 저자세가 된다.
그래서 꼬인다.
사실 선배는 서투른 것 뿐이었으니까.
두 서투른 연인의 어수선한 사랑이야기.
44페이지의 커밍아웃 씬은 꼭 볼것.
아사리 요시토의 팬이라면 이런 장면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아아 너희들.
즐겁게 사랑해라.
# by | 2006/12/29 09:10 | Boy`s Love | 트랙백 | 덧글(8)



